1화
헌터는 죽으면 무거워진다
사람은 죽으면 21그램이 빠진다는 말이 있다.
영혼 무게라나 뭐라나.
헌터는 반대다.
헌터는 죽으면 무거워진다.
D급은 티도 안 난다. C급은 사흘이면 10킬로쯤 붙는다. B급부터는 들것 손잡이가 휜다.
S급은, 처음 들어온 날 화물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주인 잃은 마력이 몸 안에서 굳어서 그렇다. 교과서에는 '잔류 마력 경화 현상'이라고 나오는데, 현장에서는 다들 그냥 돌 된다고 한다.
죽고 사흘. 정확히는 72시간.
그 안에 마력을 빼내지 못하면 둘 중 하나다.
굳거나.
일어나거나.
돌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
각성자 유해 수습사. 줄여서 수습사. 다들 그냥 염장이라고 부른다.
죽은 헌터 몸에서 마력을 빼내는 일을 한다. 굳기 전에, 일어나기 전에.
나는 이 일을 10년 했다.
그동안 모신 손님이 천이백마흔일곱 분.
오늘 오신 분이 천이백마흔여덟 번째였다.
형광등이 두 번 깜빡이더니 나갔다.
비상 발전기가 돌기까지 4초. 속으로 셌다. 하나, 둘, 셋, 넷.
불이 다시 들어왔다.
바깥 사정은 굳이 올라가 보지 않아도 알았다. 사흘 전부터 서울 하늘에는 금이 스물몇 줄 가 있었고,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한강 이남 방어선 철수'였다. 그다음부터는 치직거리는 소리만 났다.
사이렌이 울렸다가, 멀어졌다가, 끊겼다.
을지로4가 인쇄골목 끝, 3층짜리 건물 지하. 만복장례식장 안치실에는 나 혼자였다.
직원들은 어제 다 보냈다. 퇴직금 대신 냉동실에 있던 편육을 싸 줬다. 막내가 울면서 받아 갔다.
편육 때문은 아니었을 거다.
수습대 위에는 손님이 한 분 누워 계셨다.
아버지는 망자를 손님이라고 불렀다. 시신이라고 하면 혼났다. 유해라고 해도 혼났다. 서류에나 그렇게 쓰는 거지 입으로는 손님이라고 해라, 그 양반들이 여기 뭐 하러 왔겠냐, 대접받으러 왔지.
그 버릇이 아직 남아 있다.
흰 천을 걷었다.
흰 머리카락이 먼저 보였다.
원래는 검은 머리였다고 들었다. 마력을 너무 오래, 너무 세게 쓰면 색이 빠진다. 스물아홉에 머리가 하얗게 센 헌터는 이 나라에 한 명뿐이었다.
윤서하.
S급. 칭호는 백야(白夜).
대한민국의 마지막 S급 헌터.
그녀를 여기까지 업고 온 건 관리청 제복을 입은 청년이었다. 왼팔이 없었다. 남은 팔 하나로 사흘째 굳어 가는 S급을 업고 계단을 내려왔다. 정전이라 엘리베이터는 서 있었다.
"여기가… 만복장례식장, 맞습니까."
"맞습니다."
"을지로 염장이가 아직 여기 있다고 해서."
"그렇게들 부르긴 합니다."
청년은 윤서하를 수습대에 눕히고 한참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끝내 안 했다. 대신 허리를 깊이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는 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위로, 사이렌이 끊긴 쪽으로.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저 친구 부고는 누가 쓰나.
장갑을 벗었다.
손끝이 검었다. 열 손가락 전부, 둘째 마디까지.
이 일을 오래 하면 다 이렇게 된다. 흑지(黑指)라고 부른다. 맨손으로 마력을 받아 내다 보면 조금씩 스며드는데, 비각성자 몸에 들어온 마력은 나가질 않는다. 쌓이기만 한다.
아버지 손도 이랬다.
어릴 때는 그게 싫어서 아버지 손을 안 잡았다. 소풍 때도, 입학식 때도. 아버지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장갑을 끼고 다녔다.
한여름에도.
수습은 발끝부터 한다.
엄지발가락을 쥐고 숨을 고른 다음, 기다린다. 억지로 끌어내면 안 된다. 마력은 겁이 많다. 주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걸 살살 달래서 손끝으로 옮겨 오는 거다.
아버지는 이걸 '모셔 온다'고 했다.
차가운 게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다 확, 뜨거워졌다.
"……씨."
욕이 반만 나왔다.
S급이 처음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여섯 분을 모셨다. 그런데 이건 결이 달랐다. 쇳물을 손가락에 붓는 것 같았다.
검은 게 둘째 마디를 넘어 손바닥으로 번졌다.
알고 있었다. 수습사 필기시험 문제집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비각성자는 A급 이상의 유해를 단독으로 수습하지 않는다.'
이유는 안 나와 있다. 쓸 필요가 없어서다.
그래도 손을 떼지 않았다.
S급을 그냥 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으니까.
2029년 4월. 대한민국 1위 헌터 권태산이 죽었을 때, 관리청은 수습사를 열두 명 불렀다. 그중 막내가 나였다.
열둘 중 일곱은 흑지가 손목을 넘어 은퇴했다.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렇게 매달렸는데도 반나절이 늦었다. 권태산의 오른손이 딱 한 번 움켜쥐었던 을지로3가역 기둥은 지금도 휘어 있다.
이 손님이 일어나면 을지로에 남아나는 게 없다.
…사실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손님이니까.
손님을 반쯤 모시다 마는 장례식장은 없다.
발목, 무릎, 허벅지. 배, 가슴.
천천히 올라가다가 왼쪽 쇄골 밑에서 손이 멈췄다.
상처가 있었다.
치명상이었다. 왼쪽 쇄골 아래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한 번에 내리그은 자국.
천 분 넘게 모시다 보면 상처만 봐도 대충 안다. 발톱은 서너 줄로 찢는다. 이빨은 뜯는다. 산(酸)은 녹인다.
이건 그어져 있었다.
단면이 너무 깨끗했다. 망설인 흔적이 없었다. 한 번에, 끝까지.
사람이 낸 상처였다. 그것도 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
그리고 나는 이 각도를 전에 본 적이 있었다.
권태산의 가슴에서.
그때 관리청에 보고서를 올렸었다. 답은 한 줄로 왔다.
'칼날형 전지(前肢)를 가진 개체에 의한 손상으로 판단됨.'
그다음 달, 만복장례식장은 관리청 지정 업체 목록에서 빠졌다.
"……누가 그랬어요."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검은 게 팔꿈치를 넘었다. 숨 쉬는 게 조금 불편해졌다.
마지막으로 정수리.
손바닥을 얹자, 남아 있던 게 한꺼번에 밀려왔다.
눈앞이 하얘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바닥에 앉아 있었다.
오른손에 뭔가 쥐고 있었다. 펴 보니 사리였다.
수습이 끝나면 유해에 남아 있던 마력이 한 알로 뭉친다. 그걸 사리라고 부른다. 스님들 사리랑은 상관없다. 처음에 누가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D급 사리는 좁쌀만 하고 C급은 콩알만 하다. 비싼 건 비싸다. S급 사리 한 알이면 강남에 아파트를 샀다.
이제 강남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서하의 사리는 새끼손톱만 했다. 하얗고, 따뜻했다.
유족 없음. 관리청 연락 두절.
돌려드릴 데가 없었다.
사리를 그녀의 손에 쥐여 드렸다. 손이 가벼웠다. 굳는 게 멈춘 거다.
다행이었다.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책상 서랍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아버지가 쓰던 거다. 촉이 살짝 휘었는데, 오히려 이걸로 써야 글씨가 제대로 나온다.
부고는 손으로 쓴다. 우리 집 규칙이다. 한 블록만 나가면 인쇄소가 널렸는데도 아버지는 끝까지 손으로 썼다. 기계로 뽑은 부고는 영수증 같다나.
검은 테를 두른 부고 용지를 펴고 적었다.
訃告
故 윤서하 님께서 (향년 29세)
2036년 12월 19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 드립니다.
- 빈소
- 만복장례식장
- 발인
- 상주
만복장례식장
발인 칸에서 펜이 멈췄다.
발인은 누가 하나.
웃음이 났다. 기침이 같이 나왔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뗐더니 검은 게 묻어났다.
아.
이거 나도구나.
흑지가 목을 넘은 건 처음이었다. 수습사들끼리 도는 말이 있다. 검은 게 목을 넘으면 그날 밤을 못 넘긴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나 보다.
오늘이 동지였다. 1년 중에 밤이 제일 긴 날.
길기도 하겠네.
부고 용지를 한 장 더 꺼냈다.
訃告
故 한겨울 님께서 (향년 세)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 드립니다.
- 빈소
- 발인
- 상주
만복장례식장
거기까지 쓰고 펜을 내려놨다. 더 쓸 게 없었다. 상주도 없고, 발인할 사람도 없고, 향년 서른넷은 적기가 좀 민망했다.
수습대 옆 의자에 앉았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누구한테 한 말인지는 나도 몰랐다.
눈을 감았다.
사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어두웠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소리만은 또렷했다.
사락. 사락.
방명록이었다. 빈소 입구에 놓는, 조문객이 이름을 적고 가는 그 공책. 10년을 들었다. 소리만 들어도 안다.
어둠 속에 흰 글씨가 한 줄 떠올랐다.
오태구
아는 이름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 스물다섯에 구로에서 죽은 놈. 내가 처음으로 염한 친구.
한 줄이 더 적혔다.
권태산
그다음부터는 빨라졌다.
한 줄 적힐 때마다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모르는 이름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내가 모신 손님들이었다.
전부 내가 부고를 쓴 사람들이었다.

[조문객 1,247명]
그리고 글씨가 바뀌었다.
[부의(賻儀)가 접수되었습니다.]
부의?
[부의금 합계: 10년]
……10년?
10만 원도 아니고 10년. 장례식장 집 아들로 태어나서 별별 부조를 다 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10년이면, 내가 이 일을 한 햇수였다.
방명록이 한 장 더 넘어갔다.
맨 끝줄에, 다른 이름들보다 한참 늦게, 조금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름이 하나 더 적혔다.
윤서하
[발인(發靷)을 연기합니다.]
천장이 보였다.
누런 석고보드 천장. 한가운데 물 샌 자국이 있었다. 한반도 모양이라고 아버지가 끝까지 안 고친 얼룩이었다. 독도까지 있다고 우겼다.
2층 사무실이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인조가죽이 다 일어나서, 누우면 스프링이 옆구리를 찌르는 그 소파.
말이 안 됐다.
이 소파는 2031년에 버렸다. 내가 버렸다. 대형폐기물 스티커가 8천 원이었다.
손을 들어 봤다.
손끝이 하얬다.
한참 봤다. 뒤집어서도 보고 형광등에 비춰서도 봤다. 손톱 밑까지 멀쩡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못 본 손이었다.
아니. 10년 전에는 매일 보던 손이었다.
탁자 위에 휴대폰이 있었다. 액정 모서리에 금 간 거. 이것도 기억났다. 이 무렵 쓰던 거다.
화면을 켰다.
2026년 9월 28일 월요일
9:08
카카오톡오후 6:47
태구
야 살아있냐ㅋㅋㅋ 어제 너 혼자 소주 네 병 깐 거 기억함?
죽은 놈이 나한테 살아 있냐고 묻고 있었다.
어제가 동창 모임이었다. 그래서 속이 이렇게 쓰렸구나.
벽에 걸린 TV에서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소리를 줄여 놨는지 자막만 흘렀다.
화면 속에서 산만 한 남자가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2029년 4월 11일.
저 사람 부고도 내가 썼다.
"겨울아!"
계단 밑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자냐? 안 자면 내려와서 좀 거들어라. 손님 들어오셨다."
몸이 굳었다.
이 목소리를 안다. 이 말도 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안다.
10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생각했으니까.
그날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소파에 누운 채로 "아, 5분만요." 했던가.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안 내려갔다. 속은 쓰렸고, 머리는 깨질 것 같았고, C급 수습 정도는 아버지 혼자서도 충분했으니까. 아버지는 C급만 삼백 분 넘게 모신 사람이었다.
다시 눈을 뜬 건 새벽 1시 20분이었다.
아래층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야, 한겨울! 대답 안 하냐?"
"……가요."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목이 잠겨서 그런 거라고 치기로 했다.
"지금 가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중간에 발을 헛디뎌 두 칸을 미끄러졌다. 정강이가 모서리에 찍혔다. 아팠다. 상관없었다.
지하 1층. 안치실 철문.
밀었다.
아버지가 있었다.
반백의 스포츠머리. 헐렁한 검은 양복에 반쯤 풀린 넥타이. 오른쪽 귀에 담배가 한 개비 꽂혀 있었다. 안치실에서는 절대 안 피우면서 귀에는 꼭 꽂고 들어갔다.
수습대 앞에서 장갑을 끼던 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뛰어. 손님 앞에서 뛰지 말랬지."
할 말이 많았다. 10년 치가 있었다.
막상 입에서 나온 건 이거였다.
"……밥은 드셨어요?"
아버지가 이상한 걸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
"너 술 아직 안 깼냐?"
그리고 그때 보였다.
아버지 머리 위에.

종이 한 장이 떠 있었다. 검은 테를 두른, 손바닥만 한 종이.
낯선 물건이 아니었다. 10년 동안 천이백 장 넘게 쓴 물건이다.
부고였다.
訃告
故 한만복 님께서 (향년 58세)
2026년 9월 28일 오후 11시 41분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 드립니다.
- 빈소
- 만복장례식장 특실
- 발인
- 2026년 9월 30일 오전 7시
- 상주
- 子 한겨울
만복장례식장
[고유 권능 '부고(訃告)'가 개화했습니다.]
오후 11시 41분.
안치실 CCTV에 찍혀 있던 시각이다. 그 영상은 한 번 봤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
벽시계를 봤다.
9시 12분.
두 시간 이십구 분.
수습대 위에는 흰 천을 덮은 손님이 누워 계셨다. 천 밖으로 나온 발목에 인식표가 걸려 있었다.
- 성명
- 박진철
- 등급 · 나이
- C · 41
- 사망 추정
- 9월 25일 오후 11시 40분경
72시간.
셈은 금방 끝났다.
아버지 머리 위의 글씨를 한 번 더 읽었다. 날짜, 시각, 빈소, 발인, 상주.
글씨가 눈에 익었다.
당연했다.
내가 처음으로 쓴 부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