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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부고를 전부 외우고 회귀했다
검은 정장에 흰 장갑을 낀 젊은 남자가 영정과 흰 국화가 층층이 쌓인 장례식장 통로에 서서 만년필과 부고 용지를 들고 있다. 뒤편 창밖 하늘이 푸르게 갈라져 있다.

헌터 부고를전부 외우고 회귀했다

현대판타지 · 회귀 · 헌터

이번엔, 부고를 쓰지 않는다.

을지로 인쇄골목 끝, 헌터 전문 장례식장 ‘만복’.

염장이 한겨울은 10년 동안 죽은 헌터 1,247명의 마력을 거두고 부고를 썼다.

세상이 끝나던 동짓날 밤, 마지막 S급 헌터를 모시고 눈을 감았는데

[조문객 1,247명][부의금 합계: 10년][발인(發靷)을 연기합니다.]

눈을 뜨니 10년 전, 아버지가 죽던 밤이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는지.
나는 전부 외우고 있다.

장르
현대판타지,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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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 장례지도사 · 미스터리 ·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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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설정집

1화

헌터는 죽으면 무거워진다

공백 포함 6,028자 읽는 데 약 11분

사람은 죽으면 21그램이 빠진다는 말이 있다.
영혼 무게라나 뭐라나.

헌터는 반대다.

헌터는 죽으면 무거워진다.

D급은 티도 안 난다. C급은 사흘이면 10킬로쯤 붙는다. B급부터는 들것 손잡이가 휜다.

S급은, 처음 들어온 날 화물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주인 잃은 마력이 몸 안에서 굳어서 그렇다. 교과서에는 '잔류 마력 경화 현상'이라고 나오는데, 현장에서는 다들 그냥 돌 된다고 한다.

죽고 사흘. 정확히는 72시간.
그 안에 마력을 빼내지 못하면 둘 중 하나다.

굳거나.

일어나거나.

돌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

각성자 유해 수습사. 줄여서 수습사. 다들 그냥 염장이라고 부른다.

죽은 헌터 몸에서 마력을 빼내는 일을 한다. 굳기 전에, 일어나기 전에.

나는 이 일을 10년 했다.

그동안 모신 손님이 천이백마흔일곱 분.

오늘 오신 분이 천이백마흔여덟 번째였다.

형광등이 두 번 깜빡이더니 나갔다.

비상 발전기가 돌기까지 4초. 속으로 셌다. 하나, 둘, 셋, 넷.

불이 다시 들어왔다.

바깥 사정은 굳이 올라가 보지 않아도 알았다. 사흘 전부터 서울 하늘에는 금이 스물몇 줄 가 있었고,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한강 이남 방어선 철수'였다. 그다음부터는 치직거리는 소리만 났다.

사이렌이 울렸다가, 멀어졌다가, 끊겼다.

을지로4가 인쇄골목 끝, 3층짜리 건물 지하. 만복장례식장 안치실에는 나 혼자였다.

직원들은 어제 다 보냈다. 퇴직금 대신 냉동실에 있던 편육을 싸 줬다. 막내가 울면서 받아 갔다.

편육 때문은 아니었을 거다.

수습대 위에는 손님이 한 분 누워 계셨다.

아버지는 망자를 손님이라고 불렀다. 시신이라고 하면 혼났다. 유해라고 해도 혼났다. 서류에나 그렇게 쓰는 거지 입으로는 손님이라고 해라, 그 양반들이 여기 뭐 하러 왔겠냐, 대접받으러 왔지.

그 버릇이 아직 남아 있다.

흰 천을 걷었다.

흰 머리카락이 먼저 보였다.

원래는 검은 머리였다고 들었다. 마력을 너무 오래, 너무 세게 쓰면 색이 빠진다. 스물아홉에 머리가 하얗게 센 헌터는 이 나라에 한 명뿐이었다.

윤서하.

S급. 칭호는 백야(白夜).

대한민국의 마지막 S급 헌터.

그녀를 여기까지 업고 온 건 관리청 제복을 입은 청년이었다. 왼팔이 없었다. 남은 팔 하나로 사흘째 굳어 가는 S급을 업고 계단을 내려왔다. 정전이라 엘리베이터는 서 있었다.

"여기가… 만복장례식장, 맞습니까."
"맞습니다."
"을지로 염장이가 아직 여기 있다고 해서."
"그렇게들 부르긴 합니다."

청년은 윤서하를 수습대에 눕히고 한참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끝내 안 했다. 대신 허리를 깊이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는 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위로, 사이렌이 끊긴 쪽으로.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저 친구 부고는 누가 쓰나.

장갑을 벗었다.

손끝이 검었다. 열 손가락 전부, 둘째 마디까지.

이 일을 오래 하면 다 이렇게 된다. 흑지(黑指)라고 부른다. 맨손으로 마력을 받아 내다 보면 조금씩 스며드는데, 비각성자 몸에 들어온 마력은 나가질 않는다. 쌓이기만 한다.

아버지 손도 이랬다.

어릴 때는 그게 싫어서 아버지 손을 안 잡았다. 소풍 때도, 입학식 때도. 아버지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장갑을 끼고 다녔다.

한여름에도.

수습은 발끝부터 한다.

엄지발가락을 쥐고 숨을 고른 다음, 기다린다. 억지로 끌어내면 안 된다. 마력은 겁이 많다. 주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걸 살살 달래서 손끝으로 옮겨 오는 거다.

아버지는 이걸 '모셔 온다'고 했다.

차가운 게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다 확, 뜨거워졌다.

"……씨."

욕이 반만 나왔다.

S급이 처음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여섯 분을 모셨다. 그런데 이건 결이 달랐다. 쇳물을 손가락에 붓는 것 같았다.

검은 게 둘째 마디를 넘어 손바닥으로 번졌다.

알고 있었다. 수습사 필기시험 문제집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비각성자는 A급 이상의 유해를 단독으로 수습하지 않는다.'

이유는 안 나와 있다. 쓸 필요가 없어서다.

그래도 손을 떼지 않았다.

S급을 그냥 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으니까.

2029년 4월. 대한민국 1위 헌터 권태산이 죽었을 때, 관리청은 수습사를 열두 명 불렀다. 그중 막내가 나였다.

열둘 중 일곱은 흑지가 손목을 넘어 은퇴했다.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렇게 매달렸는데도 반나절이 늦었다. 권태산의 오른손이 딱 한 번 움켜쥐었던 을지로3가역 기둥은 지금도 휘어 있다.

이 손님이 일어나면 을지로에 남아나는 게 없다.

…사실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손님이니까.

손님을 반쯤 모시다 마는 장례식장은 없다.

발목, 무릎, 허벅지. 배, 가슴.

천천히 올라가다가 왼쪽 쇄골 밑에서 손이 멈췄다.

상처가 있었다.

치명상이었다. 왼쪽 쇄골 아래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한 번에 내리그은 자국.

천 분 넘게 모시다 보면 상처만 봐도 대충 안다. 발톱은 서너 줄로 찢는다. 이빨은 뜯는다. 산(酸)은 녹인다.

이건 그어져 있었다.

단면이 너무 깨끗했다. 망설인 흔적이 없었다. 한 번에, 끝까지.

사람이 낸 상처였다. 그것도 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

그리고 나는 이 각도를 전에 본 적이 있었다.

권태산의 가슴에서.

그때 관리청에 보고서를 올렸었다. 답은 한 줄로 왔다.

'칼날형 전지(前肢)를 가진 개체에 의한 손상으로 판단됨.'

그다음 달, 만복장례식장은 관리청 지정 업체 목록에서 빠졌다.

"……누가 그랬어요."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검은 게 팔꿈치를 넘었다. 숨 쉬는 게 조금 불편해졌다.

마지막으로 정수리.

손바닥을 얹자, 남아 있던 게 한꺼번에 밀려왔다.

눈앞이 하얘졌다.

흰 머리의 여자가 수습대에 누워 있고, 팔꿈치까지 검게 물든 남자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창밖으로 눈과 불타는 도시가 보인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바닥에 앉아 있었다.

오른손에 뭔가 쥐고 있었다. 펴 보니 사리였다.

수습이 끝나면 유해에 남아 있던 마력이 한 알로 뭉친다. 그걸 사리라고 부른다. 스님들 사리랑은 상관없다. 처음에 누가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D급 사리는 좁쌀만 하고 C급은 콩알만 하다. 비싼 건 비싸다. S급 사리 한 알이면 강남에 아파트를 샀다.

이제 강남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서하의 사리는 새끼손톱만 했다. 하얗고, 따뜻했다.

유족 없음. 관리청 연락 두절.

돌려드릴 데가 없었다.

사리를 그녀의 손에 쥐여 드렸다. 손이 가벼웠다. 굳는 게 멈춘 거다.

다행이었다.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책상 서랍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아버지가 쓰던 거다. 촉이 살짝 휘었는데, 오히려 이걸로 써야 글씨가 제대로 나온다.

부고는 손으로 쓴다. 우리 집 규칙이다. 한 블록만 나가면 인쇄소가 널렸는데도 아버지는 끝까지 손으로 썼다. 기계로 뽑은 부고는 영수증 같다나.

검은 테를 두른 부고 용지를 펴고 적었다.

訃告

故 윤서하 님께서 (향년 29세)

2036년 12월 19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 드립니다.

빈소
만복장례식장
발인
상주

만복장례식장

발인 칸에서 펜이 멈췄다.

발인은 누가 하나.

웃음이 났다. 기침이 같이 나왔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뗐더니 검은 게 묻어났다.

아.

이거 나도구나.

흑지가 목을 넘은 건 처음이었다. 수습사들끼리 도는 말이 있다. 검은 게 목을 넘으면 그날 밤을 못 넘긴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나 보다.

오늘이 동지였다. 1년 중에 밤이 제일 긴 날.

길기도 하겠네.

부고 용지를 한 장 더 꺼냈다.

訃告

故 한겨울 님께서 (향년 세)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 드립니다.

빈소
발인
상주

만복장례식장

거기까지 쓰고 펜을 내려놨다. 더 쓸 게 없었다. 상주도 없고, 발인할 사람도 없고, 향년 서른넷은 적기가 좀 민망했다.

수습대 옆 의자에 앉았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누구한테 한 말인지는 나도 몰랐다.

눈을 감았다.

사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어두웠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소리만은 또렷했다.

사락. 사락.

방명록이었다. 빈소 입구에 놓는, 조문객이 이름을 적고 가는 그 공책. 10년을 들었다. 소리만 들어도 안다.

어둠 속에 흰 글씨가 한 줄 떠올랐다.

오태구

아는 이름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 스물다섯에 구로에서 죽은 놈. 내가 처음으로 염한 친구.

한 줄이 더 적혔다.

권태산

그다음부터는 빨라졌다.

이지은박철규최말순김도윤정하람강…

한 줄 적힐 때마다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모르는 이름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내가 모신 손님들이었다.

전부 내가 부고를 쓴 사람들이었다.

어둠 속에 펼쳐진 방명록 뒤로, 흰 국화를 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끝없이 줄지어 서 있다.

[조문객 1,247명]

그리고 글씨가 바뀌었다.

[부의(賻儀)가 접수되었습니다.]

부의?

[부의금 합계: 10년]

……10년?

10만 원도 아니고 10년. 장례식장 집 아들로 태어나서 별별 부조를 다 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10년이면, 내가 이 일을 한 햇수였다.

방명록이 한 장 더 넘어갔다.

맨 끝줄에, 다른 이름들보다 한참 늦게, 조금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름이 하나 더 적혔다.

윤서하

[발인(發靷)을 연기합니다.]

천장이 보였다.

누런 석고보드 천장. 한가운데 물 샌 자국이 있었다. 한반도 모양이라고 아버지가 끝까지 안 고친 얼룩이었다. 독도까지 있다고 우겼다.

2층 사무실이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인조가죽이 다 일어나서, 누우면 스프링이 옆구리를 찌르는 그 소파.

말이 안 됐다.

이 소파는 2031년에 버렸다. 내가 버렸다. 대형폐기물 스티커가 8천 원이었다.

손을 들어 봤다.

손끝이 하얬다.

한참 봤다. 뒤집어서도 보고 형광등에 비춰서도 봤다. 손톱 밑까지 멀쩡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못 본 손이었다.

아니. 10년 전에는 매일 보던 손이었다.

탁자 위에 휴대폰이 있었다. 액정 모서리에 금 간 거. 이것도 기억났다. 이 무렵 쓰던 거다.

화면을 켰다.

2026년 9월 28일 월요일

9:08

카카오톡오후 6:47

태구

야 살아있냐ㅋㅋㅋ 어제 너 혼자 소주 네 병 깐 거 기억함?

죽은 놈이 나한테 살아 있냐고 묻고 있었다.

어제가 동창 모임이었다. 그래서 속이 이렇게 쓰렸구나.

벽에 걸린 TV에서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소리를 줄여 놨는지 자막만 흘렀다.

뉴스청운 길드 권태산, 강남 7번 게이트 단독 공략… "부상자 없어"

화면 속에서 산만 한 남자가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2029년 4월 11일.

저 사람 부고도 내가 썼다.

"겨울아!"

계단 밑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자냐? 안 자면 내려와서 좀 거들어라. 손님 들어오셨다."

몸이 굳었다.

이 목소리를 안다. 이 말도 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안다.

10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생각했으니까.

그날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소파에 누운 채로 "아, 5분만요." 했던가.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안 내려갔다. 속은 쓰렸고, 머리는 깨질 것 같았고, C급 수습 정도는 아버지 혼자서도 충분했으니까. 아버지는 C급만 삼백 분 넘게 모신 사람이었다.

다시 눈을 뜬 건 새벽 1시 20분이었다.

아래층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야, 한겨울! 대답 안 하냐?"

"……가요."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목이 잠겨서 그런 거라고 치기로 했다.

"지금 가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중간에 발을 헛디뎌 두 칸을 미끄러졌다. 정강이가 모서리에 찍혔다. 아팠다. 상관없었다.

지하 1층. 안치실 철문.

밀었다.

아버지가 있었다.

반백의 스포츠머리. 헐렁한 검은 양복에 반쯤 풀린 넥타이. 오른쪽 귀에 담배가 한 개비 꽂혀 있었다. 안치실에서는 절대 안 피우면서 귀에는 꼭 꽂고 들어갔다.

수습대 앞에서 장갑을 끼던 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뛰어. 손님 앞에서 뛰지 말랬지."

할 말이 많았다. 10년 치가 있었다.

막상 입에서 나온 건 이거였다.

"……밥은 드셨어요?"

아버지가 이상한 걸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

"너 술 아직 안 깼냐?"

그리고 그때 보였다.

아버지 머리 위에.

안치실 수습대 옆에서 장갑을 끼던 중년 남자가 문 쪽을 돌아본다. 그의 머리 위에 검은 테를 두른 종이 한 장이 떠 있다.

종이 한 장이 떠 있었다. 검은 테를 두른, 손바닥만 한 종이.

낯선 물건이 아니었다. 10년 동안 천이백 장 넘게 쓴 물건이다.

부고였다.

訃告

故 한만복 님께서 (향년 58세)

2026년 9월 28일 오후 11시 41분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 드립니다.

빈소
만복장례식장 특실
발인
2026년 9월 30일 오전 7시
상주
子 한겨울

만복장례식장

[고유 권능 '부고(訃告)'가 개화했습니다.]

오후 11시 41분.

안치실 CCTV에 찍혀 있던 시각이다. 그 영상은 한 번 봤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

벽시계를 봤다.

9시 12분.

두 시간 이십구 분.

수습대 위에는 흰 천을 덮은 손님이 누워 계셨다. 천 밖으로 나온 발목에 인식표가 걸려 있었다.

성명
박진철
등급 · 나이
C · 41
사망 추정
9월 25일 오후 11시 40분경

72시간.

셈은 금방 끝났다.

아버지 머리 위의 글씨를 한 번 더 읽었다. 날짜, 시각, 빈소, 발인, 상주.

글씨가 눈에 익었다.

당연했다.

내가 처음으로 쓴 부고였다.

다음 화2화 · 두 시간 이십구 분준비 중

비주얼 설정집

설정집

1화 시점(2026년 9월 28일)까지 드러난 내용과, 한겨울만 알고 있는 원래 역사를 함께 정리했습니다.

세계관 WORLD

2016년 11월 3일 새벽 4시 12분, 을지로3가 하늘에 금이 갔다. 그날 이후 세상에는 헌터가 생겼고, 헌터의 장례를 치르는 사람도 생겼다.

셔터가 내려간 을지로 인쇄골목 위로 밤하늘이 푸르게 갈라지고,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골목 한가운데서 올려다보고 있다.

균열 龜裂

공식 명칭은 차원 균열. 뉴스에서도 술자리에서도 다들 게이트라고 부른다. 첫 균열은 을지로3가 상공에서 열렸고, 그날 412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이듬해 봄부터 마력을 다루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관리청은 이들을 각성자라 부르고 F부터 S까지 여섯 등급으로 나눴다. 그중 균열 공략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헌터다.

국내 등록 헌터
약 21,000명
S급
7명
관할
각성자관리청

수치는 2026년 9월 기준.

안치실 수습대 위에서 흰 천을 뒤집어쓴 유해가 몸을 일으키고, 돌처럼 굳은 잿빛 손이 철제 수습대 모서리를 움켜쥐고 있다. 바닥에 흰 면장갑 한 짝이 떨어져 있다.

헌터는 죽으면 무거워진다

각성자가 죽으면 주인을 잃은 마력이 몸 안에 남는다. 이 마력은 시간이 갈수록 굳으면서 유해를 무겁게 만든다. 이를 경화라 한다.

사망 후 72시간 안에 마력을 빼내지 못하면 유해는 완전히 굳어 돌이 되거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뒤쪽을 망령화라고 부른다. 등급이 높을수록 망령화 쪽으로 기운다.

등급별 사흘 뒤 무게 변화 (수습사들 사이의 기준)
등급사흘 뒤
D티도 안 난다
C10킬로쯤 붙는다
B들것 손잡이가 휜다
A지게차를 부른다
S화물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2018년 6월, 안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B급 헌터의 유해가 발인 전날 밤 일어나 조문객 11명이 숨졌다. 이듬해 각성자 유해 관리법이 시행됐다.

손가락 끝이 검게 물든 두 손이 휜 만년필로 검은 테를 두른 종이에 글씨를 쓰고 있다. 옆에 흰 면장갑과 향이 놓여 있다.

수습사와 흑지 收拾士 · 黑指

유해에 남은 마력을 손끝으로 받아 내는 국가자격 전문직. 정식 명칭은 각성자 유해 수습사, 현장에서는 염장이. 1급은 B급 이상, 2급은 C급 이하 유해를 맡는다. 수습은 발끝에서 시작해 정수리에서 끝나며, 전 과정을 CCTV로 녹화해야 한다.

비각성자 수습사의 손끝에는 받아 낸 마력이 조금씩 스며 검게 물든다. 흑지라고 부른다. 한번 물든 흑지는 빠지지 않는다. 검은 게 목을 넘으면 그날 밤을 못 넘긴다는 말이 있다.

‘비각성자는 A급 이상의 유해를 단독으로 수습하지 않는다.’수습사 필기시험 문제집, 첫 장
흰 수의 위에 놓인 창백한 손바닥 위에서 새끼손톱만 한 흰 구슬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흰 머리카락이 천 위로 흘러내려 있다.

사리 舍利

수습이 끝나면 유해에 남아 있던 마력이 한 알로 뭉친다. 스님들의 사리와는 관계없지만 다들 그렇게 부른다. 원칙적으로 유족에게 돌려준다.

순도가 어떤 마석보다 높아서 암시장에서 비싸게 팔린다. 사리를 노린 유해 도굴도 끊이지 않는다.

등급별 크기와 암시장 시세 (2026년 기준)
등급크기시세
D좁쌀약 40만 원
C콩알약 900만 원
B강낭콩약 1억 2천만 원
A메추리알약 9억 원
S새끼손톱거래 3건, 평균 31억 원

S급부터는 크기가 도리어 작아진다. 대신 손바닥에 올려 보면 무게가 다르다.

비 내리는 밤, 인쇄골목 막다른 곳의 낡은 3층 건물 입구에 흰 국화 조화 두 개가 서 있고, 문 안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온다.

만복장례식장

서울 중구 을지로4가, 인쇄골목 막다른 곳의 3층 건물. 한만복이 2003년 신당동에서 연 장례식장을 2019년 이곳으로 옮기며 헌터 전문으로 바꿨다. 한 블록만 나가면 인쇄소가 널렸지만 부고는 지금도 손으로 쓴다.

간판을 본 유족들은 한 번씩 멈칫한다.

층별 안내

  1. 3F살림집한씨 부자가 산다
  2. 2F사무실 · 상담실천장에 한반도 모양 물 얼룩. 독도 포함(대표 주장)
  3. 1F빈소 2실 · 접객실특실 1, 일반실 1. 육개장은 대표가 직접 끓인다
  4. B1안치실 · 수습실수습대 1대, CCTV 2대(법정 의무), 비상 발전기

인물 CHARACTERS

한겨울은 이 사람들 대부분의 부고를 이미 한 번 썼다. 카드마다 원래 역사의 부고를 붙여 두었다.

흐트러진 검은 앞머리에 졸린 눈을 한 젊은 남자가 검은 정장과 흰 면장갑 차림으로 흰 국화 한 송이를 들고 빈소 앞에 서 있다.

주인공 · 회귀자

한겨울 韓冬

나이
24세 (회귀 전 34세)
자격
2급 수습사
각성
비각성자 → 미확인
소속
만복장례식장

만복장례식장 대표 한만복의 외아들. 원래 역사에서는 아버지가 죽은 뒤 장례식장을 물려받아 10년 동안 헌터 유해 1,247구를 수습했다. 그중 S급이 여섯. 천이백마흔여덟 번째 손님이 윤서하였다.

말수가 적고 표정이 잘 안 바뀐다. 속으로는 말이 많다. 망자에게는 끝까지 존댓말을 쓰고, 부고는 반드시 아버지의 만년필로 쓴다. 사망 시각은 분 단위까지 적는다. 그렇게 쓴 부고를 전부 기억한다.

“1월에 태어나서 한겨울. 아버지는 이름을 지을 때 창밖을 봤다고 했다. 눈이 오고 있었다고.”

원래 역사의 부고

故 한겨울 님께서 (향년 세)

거기까지 쓰고 펜을 내려놨다.

흰 머리를 낮게 묶은 여자가 검은 전투 코트 차림으로 눈 내리는 폐허 속에 서 있다. 허리의 검이 희게 빛난다.
2036 · 스물아홉, 백야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은 앳된 여자가 편의점 조끼 차림으로 바코드 스캐너를 들고 무표정하게 서 있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
2026 · 열아홉, 미각성

히로인 · 대한민국의 마지막 S급

윤서하 尹瑞夏

칭호
백야(白夜)
등급
S (원래 역사)
2026년 현재
19세 · 편의점 야간 알바
무기
외날 직검

원래 역사에서는 2027년 3월 구로 게이트 사고 현장에서 각성했다. 첫 측정은 F급, 반년 뒤 재측정에서 S급이 나왔다. 그 뒤 9년 동안 최전선에 섰고, 마력을 너무 오래 써서 스물여섯에 머리가 하얗게 셌다.

치명상은 왼쪽 쇄골 아래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한 번에 그어진 검상이다. 공식 사인은 없다. 사인을 적어야 할 관리청이 먼저 무너졌다. 2026년의 윤서하는 을지로3가역 근처 편의점에서 밤을 새우는 재수생이고,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부고를 썼다. 목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원래 역사의 부고

故 윤서하 님께서 (향년 29세) 2036년 12월 19일 별세. 발인 상주

발인 칸에서 펜이 멈췄다.

짧게 깎은 반백 머리의 중년 남자가 헐렁한 검은 양복 차림으로 흰 면장갑을 끼고 있다. 손끝이 검게 물들었고 오른쪽 귀에 담배 한 개비가 꽂혀 있다.

한겨울의 아버지 · 만복장례식장 대표

한만복 韓萬福

나이
58세
자격
1급 수습사 · 경력 31년

망자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시신이라고 하면 혼내고, 유해라고 해도 혼낸다. 안치실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오른쪽 귀에는 늘 한 개비를 꽂고 들어간다. 아들이 어릴 때 검은 손끝을 싫어하자 한여름에도 장갑을 끼고 다녔다.

“손님 앞에서 뛰지 마라.”

원래 역사의 부고

故 한만복 님께서 (향년 58세) 2026년 9월 28일 오후 11시 41분 별세. 상주 子 한겨울

한겨울이 처음으로 쓴 부고.

짧은 머리에 턱수염을 기른 거구의 남자가 회색 정장 위에 올리브색 군용 코트를 걸치고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뒤로 서울 야경과 카메라 플래시가 번진다.

국내 헌터 랭킹 1위 · 청운 길드 마스터

권태산 權泰山

나이
42세
등급 · 칭호
S · 산왕(山王)

게이트 보스를 맨손으로 눌러 죽였다는 기록이 세 건 있다. 청운 길드 공채 경쟁률은 해마다 400 대 1을 넘긴다. 원래 역사에서는 2029년 을지로 2차 균열에서 죽었다. 국장으로 치렀고 수습사 열두 명이 붙었다. 그 막내가 한겨울이었다.

가슴의 검상은 ‘칼날형 전지를 가진 개체에 의한 손상’으로 기록됐다. 사리는 수습 직후 사라졌다.

원래 역사의 부고

故 권태산 님께서 (향년 45세) 2029년 4월 11일 별세. 장례 국장

스포츠머리의 덩치 큰 청년이 트레이닝복 위에 싸구려 방탄조끼를 입고, 김이 나는 육개장 그릇을 든 채 활짝 웃고 있다. 옆에 찌그러진 방패가 서 있다.

한겨울의 고등학교 동창 · 방패

오태구 吳太九

나이 · 등급
24세 · D급
소속
파티 ‘한빛’ 신입

시끄럽고 잘 먹고 잘 웃는다. 만복장례식장 빈소에 손님이 들면 조문객인 척 들어와 육개장을 두 그릇 먹고 간다. 방패는 중고다. 원래 역사에서는 2027년 3월 구로 게이트에서 파티원들을 먼저 내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았다. 한겨울이 처음으로 염한 친구다.

“야 살아있냐ㅋㅋㅋ”

원래 역사의 부고

故 오태구 님께서 (향년 25세) 2027년 3월 14일 별세

미상

그 검을 쓰는 사람

검흔
왼쪽 쇄골 아래 → 오른쪽 옆구리
확인된 상처
권태산(2029), 윤서하(2036)

두 S급의 몸에 같은 각도의 상처를 남긴 사람. 망설인 흔적이 없다. 한 번에, 끝까지. 관리청은 두 번 다 몬스터의 짓으로 처리했다.

원래 역사의 부고

故 님께서

아직 아무도 이 사람의 부고를 쓰지 않았다.

권능 ABILITIES

발인을 연기하면서 한겨울에게 남은 것들. 1화 시점에서 드러난 것은 하나뿐이다.

부고 訃告

개화 · 1화

죽음이 정해진 사람의 머리 위에 검은 테를 두른 부고가 떠오른다. 이름, 별세 일시, 빈소, 발인, 상주까지 적혀 있다. 글씨는 한겨울 본인의 필체다.

정해진 죽음이 바뀌면 부고도 바뀌는지는 아직 모른다.

부의 賻儀

미개봉

1,248봉

원래 역사에서 한겨울이 모신 망자들이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맡긴 봉투. 봉투 하나에 망자 한 사람이 남긴 것이 들어 있다. 기술일 수도, 기억일 수도, 유품일 수도 있다. 여는 조건은 봉투마다 다르다.

부의금 합계 10년은 회귀로 이미 지급되었다.

수습 收拾

변화 미확인

유해에 남은 마력을 손끝으로 받아 내는 수습사의 기술. 원래 역사에서는 흑지를 대가로 치렀고, 마지막에는 목숨으로 치렀다.

회귀 후 손끝은 깨끗하다.

연표 TIMELINE

회귀 지점 아래로는 한겨울이 기억하는 원래 역사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바뀔 수 있다.

  1. 을지로 대균열 첫 균열. 사망·실종 412명.
  2. 첫 각성자 국내 첫 각성자 공식 확인.
  3. 각성자관리청 출범 F부터 S까지 여섯 단계 등급제 도입.
  4. 안산 장례식장 사건 B급 헌터 유해가 발인 전날 밤 일어나 조문객 11명 사망.
  5. 각성자 유해 관리법 시행 수습사 국가자격 신설, 수습 전 과정 녹화 의무화.
  6. 만복장례식장 이전 을지로4가로 옮기며 헌터 전문으로 전환.
  7. 회귀 한겨울, 2층 사무실 소파에서 눈을 뜬다. 1화
  8. 한만복 사망 수습 중이던 C급 유해의 망령화.
  9. 구로 게이트 사고 오태구 사망. 같은 현장에서 윤서하 각성, 첫 측정 F급.
  10. 윤서하 재측정 S급 판정.
  11. 을지로 2차 균열 권태산 사망, 국장. 수습사 12명 투입, 1명 사망.
  12. 지정 업체 제외 검상 보고서를 올린 다음 달, 만복장례식장이 관리청 지정 업체 목록에서 빠진다.
  13. S급 연쇄 사망 공식 사인은 모두 ‘게이트 내 사고’.
  14. 대범람 서울 하늘에 금이 스물몇 줄 동시에 간다.
  15. 윤서하 사망 대한민국에 S급 헌터가 남지 않는다.
  16. 한겨울 사망 조문객 1,247명. 부의금 합계 10년. 발인 연기.

용어 GLOSSARY

장례식장 말과 헌터 말이 섞여 있다. 한겨울은 둘 다 쓴다.

균열龜裂
공식 명칭 차원 균열. 통칭 게이트.
각성자覺醒者
균열 이후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 사람. 균열 공략을 업으로 삼으면 헌터라 부른다.
관리청
각성자관리청. 헌터 등록과 등급 측정, 유해 관리 감독을 맡는다.
경화硬化
유해에 남은 마력이 굳는 현상. 유해가 무거워진다. 현장에서는 ‘돌 된다’고 한다.
망령화亡靈化
수습되지 않은 유해가 72시간 무렵부터 움직이는 현상.
수습收拾
유해의 잔류 마력을 손끝으로 받아 내는 일. 한만복은 ‘모셔 온다’고 한다.
수습사收拾士
수습을 하는 국가자격 전문직. 속칭 염장이.
흑지黑指
비각성자 수습사의 손끝이 마력에 물들어 검어지는 직업병. 빠지지 않는다.
사리舍利
수습이 끝난 뒤 한 알로 뭉친 마력 결정. 유족에게 돌려준다.
손님
만복장례식장에서 망자를 부르는 말. 시신이나 유해라고 하면 혼난다.
부고訃告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 만복장례식장은 손으로 쓴다.
부의賻儀
상가에 보내는 돈이나 물건. 한겨울은 부의금으로 10년을 받았다.
빈소殯所
영정을 모시고 조문을 받는 곳.
방명록芳名錄
조문객이 이름을 적고 가는 공책.
발인發靷
장례 마지막 날 관이 장례식장을 떠나는 일.
상주喪主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